본문 바로가기

영화 창고

존 말코비치 되기.

 


 

간만의 자유로움에 나는 잠시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하지만 온전히 게을러도 좋다고허락한 이 시간에조차 난 아침 7시 이전에 잠에서 깨고는 습관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중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랫만에 다시 "존 말코비치 되기"를 보았다. 너무 예전이라 조금씩 가물가물했던 영화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는 다시 작가와 감독이 만들어놓은 상상 나래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내가 잠시 누군가의 육체를 빌린다는 점. 거기다 조금 더 노력하면 그의 정신까지 지배가 가능하다는 것. 굉장히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일이다. 그런 일을 단돈 200달러에 가능하다면 사람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꿀것 같다. "존 말코비치 되기"는 사람들의 은밀하면서도 무의식에 억압되어있는 내면의 관음증의 욕구(모 가끔은 이런 욕구를 우아하고 세련되게억압하지 못해 의식의 수면위로 올려서 'x태'가 되고 마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린다.

 

어릴 적 초등학교 이후, 아니 사실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한 이후 난 가끔 내가 베레라는 인간의 몸을 빌려 그녀의 삶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은 요즘도 가끔 하기는 한다.)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나라는 인간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이 그리고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실체가 낯설 때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존 말코비치의 몸으로 들어가서 좁은 프래임으로 즉 존 말코비치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가끔씩 하는 나의 어이없는 그런 엉뚱한 상상이 오버랩되었다는 거다. 실제 영화의 상상력은 내가 가끔 하는 상상과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약 10년 전 영화속에서 내가 정말 좋아라하는존 쿠삭의 흐트러지고 망가진 모습에 놀라고, 단 한번 존 말코비치를 경험한 이후 옷과 머리의 포스만으로도(그녀의 연기도 물론 좋았다.) 충분히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로테역을 훌륭하게 연기한 카메론 디아즈에 다시 한번 놀라던 영화였던 거 같다.

 

 



'영화 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터널 선샤인  (0) 2012.01.05
불신지옥  (0) 2009.11.14
아내가 결혼했다.  (1) 2008.10.25
Match Point.  (1) 2008.08.17
시계 태엽 오렌지.  (0) 2008.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