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 창고

그리고....

Doodler 2004. 2. 7. 21:10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먹다 남은 포도주병이 냉장고에서 발을 구르고

마실 수도 피울 수도 없는 시간들이 있다.

차례로 지워진 번호들로 지저분해진 수첩

옛 애인이 사준 스카프를 매고 새 남자를 만나러 가기 전에 거울을 보는 여자

읽다 만 신문 한귀퉁이에 말라붙은 코딱지

가을 햇살 아래 말갗게 도드라지는

무덤처럼 부어오르는

어떻게든 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 최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