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첫 번째 하는 일은 떨리고 설레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가끔은 떨림이나 설램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첫 번째 경험도 분명이 있다.
병원이란 곳에서 학생이 아닌 신분으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직은 조금 어색한 채로 벌써 열흘이 흘렀다.
모든 것이 서툰 게 당연한 내게
레지던트가 부족해서 주치의를 해야하는 현재의 내 위치는 한편으로는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아직은 미숙하고 교수님의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사회의 초년생이지만.ㅋ
내가 매일 만나야 하는 환자중에 상처소독(소위 Dressing)을 무려 1h 가까이 해야하는 할머니 한 분 계시다.
상처 감염으로 매일 고름과 피가 너무 많이 나와 매일 소독으로도 부족한 그런 할머니시다.
의식은 있지만, 숨쉬기 어려워 기도를 절개해 그곳에 관을 넣어 Ventilator라는 기계를 통해서 숨을 쉬신다.
움직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 도 없지만 의식은 또렷하시다.
자신의 살이 썩어 냄새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는 온전히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다.
주치의로 하루에 2번. 그리고 드레싱이라는 상처 소독을 위해 1번.
이렇게 난 하루에 3번 열흘을 할머니와 마주했다.
할머니가 바라는 건 딱 2가지였다.
머리가 조금 덜 아펐으면.
그리고 조금만 더 숨쉬기가 쉬웠으면.
주치의라는 이름으로 난 할머니와 하루에 세번을 꼬박꼬박 만나지만,
난 사실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두통과 숨차는 게 모 그리 어렵냐고 하겠지만,
누구나 아는 상식처럼 의사가 완전히 고칠 수 있는 병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런 할머니가 어제부터 갑자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계속 안 좋다는 삐삐를 받으면서,
그리고 가서 할머니를 뵈면서도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현재 내 상황이 너무 원망스럽기만 했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차다는 할머니한테
나는 필요한 다른 약을 주면서 할머니께 거짓말을 했다.
머리 아픈거와 숨쉬는 걸 좀 더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약이라고.
말도 하시고 조금이나마 손을 놀리시던 할머니가 오늘은 이제 눈 뜰 기력조차 없으신지 눈마저 감고 계셨다.
갑자기 혈압과 맥박이 너무 흔들려서 위험한 한 차례 고비를 넘기시고 여전히 죽음의 문턱에 서 계신다.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에는 할머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으시다.
할머니는 소생술 금지라는 의미의 DNR을 선언하신 상태이다.
생이냐 삶의 의미냐는 현 상태에서 무의미해 보인다.
하지만 난 생.보다는 삶의 의미. 부여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순전히 내 몸뚱아리 하나에 한해서.
어제, 오늘은 겪으면서
이 자리에 서서 누군가가 떠다는 걸 지켜보는것에대해 감정을 배제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감하는 순간이다.
내게.
이런 첫 번 째 경험은 조금 늦었으면 한다.
물론 이것조차할머니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내 이기심일런지도.
그래도.
조금은. 조금은 늦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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